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를 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보고싶었다. 오래전에 <라이프 오브 파이>영화를 티비에서 봤다. 극장가서 큰 화면으로 본것도 아니였지만 굉장히 흥미롭게 봤고 인상깊게 남았다. 연극으로 나온다는 소식에 기대감으로 가득차있었다. 그렇게 언제 보러갈지 적당한 날짜를 고민하며 있었다.
박정민.
청룡영화제에서 화사의 축하무대.
화사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 구두를 들고 서 있는 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반했다. 그래서 더 고민하다가는 내 자리가 없겠구나 싶어서 당장 예매를 했었다.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
gs아트센터
2026.1.11.일 오후3시 공연
파이 박정민
아버지 황만익
엄마 송인성
오카모토 정호준
루루 첸 임민형
요리사 김형준
라니 이상아
gs아트센터는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역삼역에서 내려서 밖으로 나갈 필요없이 gs아트센터까지 쭉 이어져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티켓뽑고 바로 호랑이와 사진을 찍기위해 줄을 섰다. 사진찍고는 조금 있으니 입장해도 된다길래 들어가 앉았다.
여기가 시야가 좋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는 2층 4열 중앙쪽으로 가격을 조금이라도 낮추려고 파라노마석을 비켜서 잡았다. 그리고 운이 좋게 앞좌석에 작은 초등학생이 앉았다. 그래서 앞사람 머리에 방해도 없었다. 한강뷰 아파트 부럽지 않을정도의 시원한 뷰로 무대를 볼 수 있었다.
1층은 바닥연출을 보기어렵다고 들었다. 배우를 가까이서 보고싶은게 아니라면 2층에서 전체적인 무대를 보는것을 추천한다.
-----
(스포주의)
이 이야기는 멕시코의 한 정신병원에서 시작된다. 캐나다로 향하던 배의 침몰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일본 조사관과 캐나다 대사관 직원이 이곳을 찾아온다. 그들이 만나러 온 사람은 침몰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파이’다. 파이만이 그날의 일을 이야기해 줄 수 있다.
장면은 멕시코 정신병원에서 과거의 인도로 전환된다. 파이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동물원. 푸른 나무들, 팔랑거리며 날아다니는 나비들, 활기찬 동물들, 그리고 웃음소리가 가득한 파이의 가족들. 그러나 인도에 전쟁이 시작되면서, 파이의 가족은 동물들을 데리고 캐나다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폭풍을 만나 배는 침몰하고, 파이는 구명보트 위에 홀로 남겨진다. 그 배에는 다리가 다친 얼룩말과 오랑우탄, 하이에나가 함께 있다. 하이에나는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잡아먹고, 파이마저 위협한다. 그 순간, 호랑이가 나타나 하이에나를 잡아먹는다. 그렇게 파이와 호랑이만이 남게 된다.
파이는 호랑이와의 사투를 벌이다 길들여 보려고 한다. 그러다 둘은 지쳐가고, 그 과정에서 식인섬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게 파이는 살아남는다.
파이는 이 이야기를 조사관들에게 들려주지만, 그들은 믿지 않는다. 그러자 파이는 다른 이야기를 해준다. 다리가 다친 선원, 엄마를 요리사가 죽인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 그들에게 묻는다.
“어느 이야기가 더 나은가요?"
----

홍보영상에서 호랑이 인형을 움직이며 연습하는 장면을 보고 매료되어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연극은 정신병원에서 시작해, 배경이 자연스럽게 동물원으로 전환되며 동물들이 등장한다. 동물들을 '꼭두각시 인형(모형)’이라고 하면 어울리는 표현이겠다.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퍼펫'이라고 하고 퍼펫을 움직이는 사람을 '퍼펫티어'라고 한다.
처음 동물원으로 장면이 바뀌자 나비들이 팔랑거리며 등장한다. 배우들이 막대기를 흔들면 긴 막대기 끝에 달린 나비들이 공중에서 날아오른다. 형형색색의 나비들이 무대를 가득 채우는데,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두 번째로 염소가 등장한다. 배우가 염소 인형에 달린 막대기를 움직이며 함께 걷고 뛰는데, 처음에는 사람과 염소가 함께 뛰는 모습처럼 보인다. 하지만 곧 사람의 존재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염소만이 보인다.
이런 방식으로 오랑우탄, 거북이, 물고기 등 다양한 동물들이 표현된다.
얼룩말이나 호랑이 같은 큰 동물들은 인형 안에 배우가 직접 들어가 연기한다. 우리나라의 사자탈춤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사자탈 안에 사람이 들어가 움직이며 춤을 추는 것처럼, 이 연극에서는 한 명이 인형 안에 들어가고, 바깥에서 두 명이 머리와 꼬리 쪽을 맡아 호랑이를 묘사한다.
오랑우탄 역시 배우들이 양팔을 크게 움직이며 나무에 매달려 이동하는 모습을 만들어낸다.
동물들의 움직임은 신기하고 놀라울 정도로 실제 같다. 귀를 까딱이는 모습, 네 발로 달리는 동작, 나무에 매달려 이동하는 모습까지 보고 있으면 이곳이 극장이 아니라 정말 동물원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더해 동물들의 울음소리 역시 직접 내는 것인지, 녹음된 소리인지 잘 모르겠지만 사실적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얼룩말이 잡아먹히는 순간이다. 얼룩말 인형이 분해되어 하나하나 뜯기고, 그 안에서 빨간색의 긴 천을 뽑아내어 내장과 피를 표현한다. 그 장면을 세심하게 표현하려 한 연출의 아이디어에 놀라게 된다.
주연배우도 대단하지만 이 연극에서는 동물들을 연기한 배우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자신의 얼굴을 드러낼 수 없음에도 열심히 연기하는 모습에 대단하다고 느꼈다.

----
파이는 가족과 함께 탄 배가 난파된 후, 호랑이와 함께 바다를 표류하며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조사관들이 그 이야기를 믿지 않자, 그는 현실적인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어느 이야기가 더 나았냐”고 묻는다. 이 질문은 결국 “어느 이야기를 믿느냐”는 질문처럼 느껴졌다.
박정민 배우가 연기한 파이는, 첫 번째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태도를 가진 인물처럼 보였다. 조사관이 계속 제대로 말하라고 다그칠 때 화를 내는 모습이나, 두 번째 이야기를 하고 난 뒤 “이제 만족하냐”는 듯한 태도에서, 그는 처음 이야기가 진실인데 사람들이 믿지 못하니까 현실적인 버전을 들려주는 것 같았다.
영화는 오래전에 보아 기억이 흐릿하지만, 영화 속의 파이는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진실과 거짓인지에 대한 판단을 관객에게 맡기는 인물로 느껴졌다.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영화에서는 파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어 하는 소설가에게 들려주고 있었고, 연극에서는 침몰 사고를 조사하러 온 조사관에게 말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 입장의 조사관에게는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설명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태도뿐 아니라 이야기를 들려주는 파이의 태도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느꼈다. 그래서 영화는 둘 중 어느 이야기여도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상관없지만 연극 속에서는 서로 답답하고 화가 나는 상황이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머리로는 두 번째 이야기가 맞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논리적으로도 맞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으로는 첫 번째 이야기를 믿고 싶어졌다.
이부분에서 종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종교가 없어서 사람들이 하느님이나 성경 이야기들을 믿는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면서 종교를 믿는것에 대해 조금은 이해되었다.
사람들이 그것을 ‘말이 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기 때문에’ 믿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이가 호랑이 이야기를 만든 이유는 끔찍한 일을 겪고 미치지 않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 같은 이야기들도, 사람들이 힘겨운 삶과 고통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극장인지 동물원인지 헷갈릴 정도로 동물들을 바라보는 재미가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공연이며, 가족 단위로 관람하기에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는 CG와 3D, 4D로 이 이야기를 경험했다면, 연극에서는 인형과 사람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방식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뮤지컬,연극'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팬텀/ 타오르는 어둠속에서/컨택트/닭들의 꿈,날다/A여고 사서의 영광과 비극 (1) | 2026.03.03 |
|---|---|
| 연극[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아날로그의 나라 일본이 만든 이상한세계 (0) | 2026.02.09 |
| [연극 트랩] 재판이라 적고 덫이라 읽는다. (0) | 2025.12.08 |
| [뮤지컬 쉐도우] 이훤, 제가 여기서 죽나이다. (+공연 녹화 중계) (1) | 2025.09.15 |
| [뮤지컬 맘마미아] 그리스 섬으로의 여름휴가 (3) | 2025.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