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없는 뮤지컬이었는데 좋은 반응과 시츠프로브 영상에서 국악과 오케스트라의 조합을 보고 관심이 갔다. 좋은 반응에 비해 빈좌석이 많았다. 고민하다가 할인받을 수 있어서 가기로 결정했다.

뮤지컬<몽유도원>
샤롯데시어터
2026년 4월 12일 일요일 오후2시 공연
여경 김주택
아랑 하윤주
도미 김성식
향실 전재홍
비아 홍륜희
-좌석-
샤롯데씨어터,1층 중앙에서 12열 맨 끝. 가운데로 들어가면 앞사람머리에 가려지는게 있을까 걱정되서 끝자리를 골랐더니 왠지 아쉬웠다. 그래도 12열도 충분히 표정까지도 잘 보이는 자리였고, 무대도 크게 가리는 곳 없이 잘 보였다. 그러나 몇몇 장면에서는 2층에서 전체무대를 내려다보면 훨씬 좋겠다 싶은 장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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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 포함)
나 백제의 왕 '여경'이예요. 이쁜여자 만났어요. 샤갈! 꿈 이예요! 그 여자를 찾아서 혼인할거예요. 찾았어요. 그 여자 이름 아랑이래요. 그 여자 이미 결혼했어요.
아랑의 남편은 '도미'.여경이 내기바둑으로 도미를 궁지로 내몬다. 아랑이 도미를 찾아 궁에 오고 둘은 눈빛으로 일단 살아있자 대화한다. 둘이서 눈빛 주고받는것에 화가 난 여경. 도미눈을 찔러서 다시 아랑을 못보게 만든다. 그리고 버려진 도미 울부짖으며 1부 끝난다.
여경과아랑 혼인을 올린다. 도미와 아랑의 분노가 하늘에 닿았는지 해가 뜨지 않는다.그 사이 아랑 도망치고 여경은 더 미쳐간다. 그 사이 나라는 망가진다. 도망친 아랑 앞에 도미를 태웠던 배가 떠밀려온다. 여경의 충신 향실은 뒤늦게 두사람을 갈라놓은것을 후회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아랑 보내준다.
아랑은 자신의 얼굴이 재앙같아서 얼굴을 망가뜨린다. 망가진 얼굴로 도미를 찾던 아랑은 도미와 재회한다. 배는 굶어도 함께라서 행복한 두사람. 그런 두사람 앞에 여경이 또 찾아왔다. 아랑의 얼굴을 보고 놀란 여경. 궁에 돌아온 여경은 화살에 맞아 죽는다. 그리고 아랑과도미 행복한 모습으로 2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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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몽유도원>의 줄거리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복잡한 해석을 할 필요없이 이야기와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며 몰입하게 되는 작품이다.
유튜브에서 <몽유도원> 관련 영상 댓글 중에 “이게 나의 프랑켄슈타인이고 오페라의 유령이다”라는 댓글을 본 적이 있는데, 직접 보고 나니 왜 그런 반응이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이야기의 구조나 넘버 구성에서 비슷한 분위기와 연상되는 장면들이 꽤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식상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익숙한 느낌에 더 쉽게 몰입하게 되었고 재미있게 관람했다.
무대 연출 역시 보는 재미가 상당했다. 첫 장면에서 여경이 꿈속을 헤맬 때는 허공에 영상을 투사해(?) 거친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듯한 연출이 펼쳐진다. 번개와 비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어 도원 속 선녀들이 살랑이며 춤추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공중에서는 꽃그네가 천천히 내려오고, 그 위의 아름다운 여인이 노래를 부른다. 아래에서는 선녀들이 빙그르르 원을 그리며 춤추는데, 그 모습이 황홀해서 천국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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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과 도미의 혼례 장면, 그리고 부족이 새로운 터전을 찾을때 부르는 넘버들은 듣는 순간 벅차오르는 감정을 만든다. 마치 신문희의 <아름다운 나라>을 듣는것 처럼 희망이 밀려오면서 벅차오른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태양이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다. 극장에서 직접 보면 웅장한 사운드와 무대를 가득 채운 배우들의 노래와 춤 덕분에 절로 박수가 나오게 된다.
<흑과 백>
특히 <흑과 백>은 1부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여경이 아랑을 빼앗기 위해 도미에게 내기 바둑을 제안하는 장면인데, 누구도 물러설 수 없는 바둑 대결을 앙상블 배우들이 흑돌과 백돌이 되어 무용으로 표현해낸다. 배우들이 차례로 등장해 힘찬 춤사위를 펼치는데, 몸을 휘리릭 돌거나 발차기를 할 때마다 옷자락이 크게 흩날린다. 많은 사람들이 왜 이 장면을 극찬하는지 알 것 같았다. 다만 조금 아쉬웠던 점은 좌석이었다.이 장면 만큼은 2층에서 무대 전체를 내려다봤다면 훨씬 더 멋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해 이러십니까>
그리고 또 다른 1부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어이해 이러십니까>였다. 질투에 눈이 먼 여경은 도미의 눈을 찔러 아랑을 볼 수 없게 만들고, 도미는 배에 실려 버려진다. 이 넘버는 그런 도미가 자신에게 왜 이런 고난을 주냐며 원망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부르는 노래다. 눈을 가린 천은 붉게 물들어 있고, 도미는 앞이 보이지 않는 채 배 위를 더듬거리며 서 있다. 하늘까지 슬퍼하는 듯 비가 쏟아지고, 그 모습은 처량할 정도로 애절하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도미는 살아남겠다고, 살아 있기만 하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노래한다. 그래서 더 슬프게 느껴졌다.

이어서 도미 역을 맡은 김성식 배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랑에게는 미안하지만, 성식 도미는 정말 내가 데려가고 싶을 정도였다. 너무 잘생겼다. 그런데 그런 배우에게 안대까지 씌워놓다니 미쳤다. 김성식 배우의 목소리는 한마디로 정석적인 ‘멋진 남자’의 목소리다. 괜히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듣는 순간 “멋있다”는 생각이 드는 음색을 가졌다. 특히 <어이해 이러십니까>를 부를 때는 내가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 된다. 사랑하는 아랑은 빼앗기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앞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 그 속에서 느껴지는 분노와 슬픔,두려움 그리고 그럼에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까지 모두 담아낸다. 그리고 작은 희망을 품고 있어서 오히려 더 슬프게 느껴졌다.
-아랑-
이번에는 아랑 이야기를 해보자. 도미의 연인이자, 여경이 꿈속에서부터 찾아 헤매던 여인인 아랑. 처음에는 그저 아름답고 연약한 전형적인 여주인공일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작품 안에서 가장 용감하고 지조 있는 인물이었다.
<아, 달님이시여>는 궁으로 떠난 도미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아랑과 비아가 함께 부르는 노래다. 달님에게 내 님이 길을 잃지 않고 돌아올 수 있도록 밝혀달라고 비는 노랫말은 아름다운 옛 시조를 떠올리게 했다.
<아랑은 없다>
그리고 아랑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아랑은 없다>. 여경에게서 도망친 아랑은 도미를 찾아 나서고, 갈대숲에서 자신의 얼굴이 모든 비극의 원인이라 생각해 갈대에 얼굴을 비벼 스스로를 망가뜨린다. 그 장면에서 부르는 노래가 바로 <아랑은 없다>이다.
나 망가지고 추해 진다면
이 지옥에서 벗어날까
나 기꺼이 그렇게 하리
나 그렇게 나를 살리리
특히 “나를 살리리”라는 노랫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절망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고자 하는 아랑의 생에 대한 의지가 강렬하게 다가왔고, 그 처절함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내가 본 아랑은 하윤주 배우였다. 아름답다는 말은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첫 등장 때 꽃그네를 타고 내려오는 순간에는 정말 전래동화 속 선녀가 현실에도 있는거구나 하고 깨닫게 해준다. 여경이 아니라 내가 반해버릴 정도였다.
-국악-
제사장인 비아의 경우 국악 특유의 발성과 기교가 한국적인 분위기와 신성함, 몽환적인 느낌을 더욱 살려주고 있었기 때문에 좋았다.
그런데 아랑의 경우 국악 특유의 발성과 고음 처리, 꺾는 창법 같은 부분은 개인적으로 조금 낯설게 느껴서 그런지 튕겼다. 같은 아랑 역인 유리아 배우는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하윤주 배우는 국악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안맞았지만 뮤지컬 <몽유도원>만의 특색에는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여경-
그리고 여경. 이 구역의 미친놈, 광기의 집착남이다. 처음에는 감정이입하며 봤는데, 도미의 눈을 찌르는 순간부터는 차라리 마음을 내려놓고 “그래, 어디까지 패악질 부리나보자” 하는 심정으로 보게 되었다.
왕의 자리에서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여경은 꿈속에서 본 여인을 찾아 헤매게 된다. 그 여인이 바로 아랑이다. 아랑이 이미 혼인한 유부녀지만 여경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권력을 이용해 도미에게서 아랑을 빼앗아버린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까지 빼앗을 수는 없는 법이다. 아랑이 도망친 뒤부터 여경의 입에서는 온통 “아랑”밖에 나오지 않는다. 나라가 망해가도, 침략을 당해도 오직 아랑만 찾는다. 보고 있으면 정말 기가 막히고 환장할 정도다.
여경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내 것이다>다. 나라 역시 엉망이 되고 아랑마저 사라진 상황에서,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라 외친다. 그리고 가질 수 없다면 모두 함께 망가져버리라고 절규한다. 그 광기 어린 집착이 무서울 정도로 강렬했다. 여경이라는 캐릭터는 어느 순간 감정이입을 포기하고 보면 오히려 더 편하게 볼 수 있는 인물이었다.
무대 연출도 인상 깊었다. 배경 스크린에는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영상이 펼쳐지는데, 장면마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살아 있었다. 먹물이 번지며 그림을 완성해가듯 배우들의 노래와 춤도 무대 위에 퍼져나가며 하나의 몽유도원을 만들어낸다. 오케스트라와 국악의 조합 역시 굉장히 신선하고 환상적이었다. 이야기 자체도 어렵지 않고, 전통적인 정서와 국악 요소가 많이 담겨 있어 연령대가 높은 관객들도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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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초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오래전에 한 차례 공연되었던 작품을 수정해 다시 선보인 <몽유도원>이었다. 많은 뮤지컬들이 외국의 고전소설이나 해외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는 가운데, 이렇게 한국적인 정서와 아름다움을 담아낸 우리만의 뮤지컬이 만들어졌다.
4월에 관람하고 한참이 지나 뒤늦게 후기를 쓰고 있지만, 아직도 여경처럼 아름다운 도원에서 긴 꿈을 꾸다 나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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