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노벨문학상이라는 큰 상을 받았다는 한강작가.
그에 따라 한강작가의 책들이 많이 팔리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소설가가 꿈이었던 오빠 덕분에 한강작가의 책들이 집에 있다. 예전에 <채식주의자>를 읽었고 그다음으로 <소년이 온다>를 읽으려고 했었다. 1장을 읽는데 시점이 이상한 거다. 집중해서 조금만 더 읽어갔다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왜인지 금방 책을 덮어버렸다.
그렇게 포기해 버린 소년이 온다를 다시 읽었다. 노벨문학상의 위력인지 이번에는 잘 읽었고 왜 왜! 내가 이 책을 지금까지 안 읽은 건지 땅을 치며 안타까웠다. 지금이라도 읽었으니 다행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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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이 책의 묘미는 시점변화다.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쭉 전개되는 단순한 이야기를 많이 봐왔다. 그래서 처음에 1장을 읽는데 어려워했다. 이번에는 집중해서 천천히 읽어나가 보니 누구의 시점인지 이해되는 그 순간... 와... 미쳤다!! 그렇게 2장, 3장 순서대로 읽어가면 1장에서 등장했던 인물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알아갈 수 있다. 엮이고 엮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시점에서 읽어가면 와... 환상 그 자체이다.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를 다룬 것에 대해서도 중요하지만 잠시만 작가님의 이야기 구성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싶다. 앞 구르기 뒷구르기 물구나무서기 해서 폴짝폴짝 뛰어다닐 정도로 놀라운 이야기 구성이다. 작가가 시간순서대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인물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만들고 각각의 인물들이 맞물려있어야 한다. 이런 구성이 너무 흥미로웠다. 물론 이야기 자체는 슬프다. 이런 구성과 시점변화가 슬프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계속 읽어나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지 않을까 싶다.
그럼 좀 더 구체적인 줄거리를 설명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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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한 수 없었던 한 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조심스럽게 네가 물었을 때, 은숙 누나는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대답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쌌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어린 새 17
-1장 어린 새, 누군가가 너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누군가는 '정대', 너는 '동호'다.
동호와 정대는 16살 남자아이로 친구다. 둘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정대가 총을 맞자 놀란 동호는 혼자 도망쳤다. 이후 동호는 죽은 정대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민주화운동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보관하는 도청에 찾아간다. 그렇게 간 곳에서 누나와 형들을 돕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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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이 덤불숲에서 내가 붙들어야 할 기억이 바로 그거였어. 내가 아직 몸을 가지고 있였던 그 밤의 모든 것. 늦은 밤 창문으로 불어 들어오던 습기 찬 바람, 그게 벗은 발등에 부드럽게 당던 감촉 잠든 누나로부터 희미하게 날아오는 로션과 파스 냄새. 삐르르 삐르르, 숨죽여 울던 마당의 풀벌레들. 우리 방 앞으로 끝없이 솟아오르는 커다란 접시꽃들. 네 부엌머리 방 맞은편 블록 담을 타고 오르 는 흐드러진 들장미들의 기척. 누나가 두 번 쓰다듬어준 내 얼굴. 누나가 사랑한 내 눈감은얼굴.
검은 숨 55
-죽은 정대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죽은 정대의 시체는 병원이나 도청으로 가지 못하고 군인들의 트럭에 실려갔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들을 묘사한 글들이 내가 죽어 영혼이 된 듯 완전히 감정이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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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은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를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일곱 개의 뺨 103
- 출판사 직원인 은숙의 이야기다. 전두환타도를 말하는 극본을 책으로 출판하려다 취조당하며 일곱 번 뺨을 맞는 은숙이다.
나는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데도 자체적으로 검열하여 나의 솔직한 생각보다는 욕먹지 않을 둥글둥글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여러 이유들로 실제 인물의 이름을 밝히기보다는 조금 바꿔서 등장시킨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전두환이라는 명확한 이름을 밝힌다. 작가의 용기가 대단하다. 글을 쓴다는게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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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 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 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쇠와 피 114
모든 사람들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 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쇠와 피 116
-4장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수감시켜 고문하는 이야기를 하며 진수를 등장시킨다. 사람들이 죽어가면서도 민주화운동을 하는 이유를 말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숭고하고 거대한 심장의 맥박를 어떤 이들은 느끼지 못한것일까? 양심같은것이 왜 시민들에게만 있었을까?
5장은 선주이야기를 하면서 정대의 누나 정미도 등장한다. 여기서는 노동운동을 하는 대목이 있다. 민주화와 노동자들의 권리개선문제는 결국 같은거라고 생각한다.
한 명 한 명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1장에서 나왔던 인물들이다. 인물들의 각자의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전체적인 이야기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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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하고 나하고 둘이서, 느이 아버지가 있는 가게까지 날마다 천번길로 걸어갔지.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지.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 끌었지.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쉽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 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지.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 로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꽃 핀 쪽으로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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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으로 동호의 어머니가 동호의 이야기를, 전체의 이야기를 완성시킨다.
이 마지막장은 눈물 없이 볼 수가 없다. 어린 동호가 햇빛 있는 데로, 밝은 쪽으로, 꽃이 많이 핀 쪽으로 걷자며 엄마를 이끄는 장면을 읽는데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이 먹먹하다. 예쁜 장면을 묘사한 글인데 그렇게 슬플 수가 없다. 그냥 눈물이 나온다.
동호는 우리들을 꽃이 핀 쪽으로 이끌어줬는데 왜 현재 여전히 우리들은 어두운 길을 걷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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