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배우로만 알고 있던 차인표배우가 썼던 소설 화제가 되면서 이 책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2009년에 이미 출간된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유퀴즈'에 나와서 오랫동안 소설을 써왔고 백두산에도 가보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배우로만 알고 있었는데 끈기를 가진 대단한 작가였다. 위안부와 관련된 이야기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그 무거운 주제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아픈 과거를 마주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괴롭고 슬프기만 할 거라는 생각에 외면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이번엔 왠지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백두산 근처의 작은 호랑이 마을에서 시작된다. 호랑이 사냥꾼 황포수와 그의 아들 용이는 전설 속 백호와 육발이 호랑이를 잡기 위해 마을에 머문다. 그곳에서 마을 촌장의 손녀 순이와, 동네의 고아 훌쩍 이와 용이는 친구가 된다.
시간이 지나 황포수와 용이는 마을을 떠나고, 다시 세월이 흘러 호랑이 마을엔 일본군이 주둔하게 된다. 그리고 마을의 유일한 처녀였던 순이는 결국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로 끌려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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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야기가 너무 길지 않고 어려울 게 없어서 누구나 읽기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안부로 끌려가 고통받는 이야기가 중심이 아니라 그렇게까지 괴롭거나 힘들지 않아서 아직 안 읽어본 분이 있다면 읽어보라고 추천한다.
읽으면서 제일 먼저 의아했던 부분이 있다.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를 다룬 소설인데, 왜 '가즈오'같은 일본군 인물을 '악인'으로 그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다른 감상을 한두 개 찾아봤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를 비난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용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를 단죄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라는 감상을 볼 수 있었다.
다른 감상을 읽고 나니 왜 가즈오를 나쁜 사람으로 묘사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전쟁 속 한 개인이었을 뿐인 그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동시에, 그 개인들이 모여 만들어낸 것이 바로 국가와 군대이며, 그 속에서 수많은 악행이 있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또 황포수와 용이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마을에 머물고, 순이와도 인연을 맺는다. 이들은 사냥꾼이지만 악인은 아니다.
후반부로 가면, 사냥꾼은 일본군으로 바뀐다. 순이는 일본군에 의해서 위안부로 끌려간다. 그러나 일본군인 가즈오를 황포수처럼 악인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이런 구조를 보며 황포수도, 가즈오도, 분명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그 안에 연루된 인물들이지만, 인간으로서의 복잡한 내면과 사연이 있다.
그래서 일본이 나쁘다고 욕하기보다 용서에 대한 이야기에 중심을 두고 보면 좋겠다.
그러면 여기서 일본을 용서해 주자는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그건 아니다. 호랑이를 사냥하려는 황포수에게 촌장님이 하는 말에서 비유적으로 일본의 잘못을 짚기도 한다. 또 극 중에서 성장한 용이는 늠름하고 용맹하다. 그런 용이가 위안부로 끌려간 순이를 구해내기 위해서 혼자서 수많은 일본군을 멋있게 해치운다. 이런 장면들을 통해서 통쾌함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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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한 용이와 순이가 다시 만나 나누는 대화가 인상 깊었다.
"상대가 빌지도 않은 용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띄엄띄엄 말을 잇는 용이의 얼굴이 깊은 외로움을 머금고
있습니다.
"용서는 백호가 용서를 빌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엄마별 때문에 하는 거야. 엄마별이 너무 보고 싶으니까. 엄마가 너무 소중하니까."
이 장면을 읽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이 이야기를 일본과 우리나라의 관계로 대입해서 읽게 되었다. 일본은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용서를 이야기하는 건 너무 빠른 것 아닐까? 너무 억울한 건 아닐까? 하는 용이와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순이에게 있어 '엄마별'은 말 그대로 순이의 엄마 뜻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고향이고 자신의 나라 결국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에게,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보듬어주었나? 사과는 가해자가 해야 하지만,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고 보듬는 일은 그들의 ‘나라’가, 바로 우리가 해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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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들은 우리가 이곳에 마을을 만들고 정착하기 훨씬 오래전부터 이 산에서 살고 있었네.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객인지 생각해 보게나. 사람에게 해가 된다고, 혹은 조금 불편하다고, 혹은 조금 이득이 생긴다고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이면 세상이 어찌 되겠는가? 설령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일지라도 말일세. 세상은 더불어 사는 곳이네. 짐승과 더불어 살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과도 더불어살 수 없는 법이야.
호랑이를 잡겠다며 마을에 머물겠다는 황포수에게 호랑이마을 촌장님이 하신 말이다.
뻔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세상은 더불어 사는 곳”이라는 말 안에 이야기의 모든 메시지가 담겨 있다.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보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픔을 기억하되 증오에 머물지 않고,
상대가 용서를 구하지 않더라도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위해 용서를 선택해야 할 때도 있다.
그 용서는 누군가의 잘못을 덮어주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고 치유하기 위한 용기다.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다보면 언젠가 같은별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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