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중계영상 보고는 <랭보>에게 반했다.
보러 가고 싶은데 뮤지컬 한번 보자고 서울로 왔다 갔다 하는 게 조금 힘들어서 고민하다 서울에 사는 친구도 만날 겸해서 보러 갔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점심 먹고 카페에서 수다도 한 시간 떨다가 길치인 나를 위해 친구가 극장 앞까지 데려다줘서 편히 보러 갔다.
바로 티켓부스 가서 티켓 받으려는데 내가 전화번호를 잘 못 기입해 놓는 실수를 했다. 다행히 신분증으로 확인하고 표를 받을 수 있었다. 혹시나 여러분도 정보를 잘 못 기입하는 일 없도록 확인해보시라고 적어둔다.

뮤지컬 <랭보> 무료 실황 중계
2025년 2월 16일(일) 오후 8시
중계 채널 네이버 TV라이브(주)채널
랭보 박정원
베를렌느 김경수
들라에 정지우
뮤지컬 랭보
2025년 3월 9일 일요일 오후 2시 공연
대학로 tom
랭보 박정원
베를렌느 안재영
들라에 신은호
대학로 tom 1관으로 소극장보다 큰 느낌이다. 저번에 <이터니티>보러 갔을 때 예스 24 아트원 1관보다 넓고 의자가 좋았다. m열로 뒤쪽이지만 시야 좋았다. 어디 앉아도 시야는 나쁘지 않을 극장이다. 그리고 내 바로 앞 좌석이 비어서 앞사람 머리에 방해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욱 시야가 좋았던 것도 있는 것 같다.
요 며칠 일이 있어서 머릿속이 복잡해서 그런가 뮤지컬에 완전히 몰입되지 못하고 중간중간 계속 딴생각이 났다. 집중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뮤지컬 <랭보>는 랭보라는 시인의 이야기다.
금쪽이 '랭보'가 자신의 시를 알아봐 주는 파리의 시인 '폴 베를렌느'를 만났다. 두 사람은 시를 쓰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지만 폴은 환청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기도 하고 현실에 부딪힌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갈등하고 헤어졌다. 랭보는 아프리카로 떠나서 시를 남기고 죽는다. 랭보가 남긴 시를 찾아 랭보의 친구 '들라에'와 폴이 아프리카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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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무료 중계로 봤을 때 아무런 정보 없이 봤다. 그래서 랭보가 시인 이름인 줄도 몰랐다. 보고 난 후 이게 실제 랭보라는 시인의 이야기인가 찾아보니 실제 시인이었다. 나무위키에서 보니 실제로 미성년자인 랭보와 폴의 동성애적인 관계, 불륜 등의 이야기도 실제였다. 그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토탈 이클립스>가 있단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전성기 시절 영화라며 소개된 적이 많아서 나도 영화 제목은 알고 있었다. 커뮤니티에서 보니 속된 말로 빻은 내용이 많아서 영화 보다가 포기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아직 영화는 안 봐서 모르겠지만 두 시인에 대해서 더 알고 싶고 관심 있다며 영화도 한 번 보면 좋겠다. 단 동성애, 불륜의 소재를 싫어한다면 영화는 안 보는 게 좋겠다. 뮤지컬 <랭보>에서는 이들의 그런 이야기가 많이 약화되어 나와서 불편하거나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대학로 뮤지컬의 주제로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랭보> 보기 전에 <퍼스트맨>도 무료중계로 봤는데 뮤지컬 <퍼스트맨>은 카뮈라는 작가의 이야기였다. 이런 예술가들의 이야기에서는 예술가의 고통이 그려지는데 그 고통에 사실 공감되지도 않고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왜 고통스러워 하나 싶다. 근데 여기서 나의 변태적인 성향이 드러난다. 인물들의 고통스러워하는 이유에는 공감되지 않지만 고통스러워하는 그 인물이 불쌍해지고 안아주고 싶고 오구오구 해주고 싶어 진다. 그래서 작 중 인물이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을 즐긴다.
랭보에서는 베를렌느가 고통스러워하는 예술가이다. 중계로 볼 때는 김경수배우였고 이번에 볼 때는 안재영배우였다. 김경수 배우는 굵은 목소리로 묵직한 느낌을 주었다. 안재영배우는 김경수배우와는 다른 느낌으로 랭보역의 박정원배우와의 호흡이 좋았다.


랭보의 친구 들라에역에는 중계로 볼 땐 정지우배우였고 이번에 볼 때는 신은호 배우였다. 비슷한 결로 연기해서 그런 건지 느낌이 비슷했다. 목소리가 두배우 모두 산골짜기 졸졸 흐르는 깨끗하고 시원한 시냇물 같다. 극 중 비중은 적지만 가장 공감되는 캐릭터였다. 나도 용기 없고 꿈이 없고 내가 뭘 해야 할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내가 뭘 잘하는지 몰라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가장 마음이 가는 인물이었다.
랭보 공연을 보러 온 가장 큰 이유는 정원랭보를 보기 위해서였다. 중계에서 보고 반해버린 박정원배우다. 랭보라는 캐릭터 자체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금쪽이 천재시인으로 매력적인 부분도 있다. 그리고 난 무엇보다도 박정원배우의 연기가 좋았다. 자유로운 역할이 참 잘 어울리는 배우이다. 무대가 지그재그로 길이 있는데 그곳을 뛰어다니며 '취한 배'넘버를 부를 때는 벅차오르면서 신난다.
나는, 투시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보통 사람은 볼 수 없는 세상 저 너머
미지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존재.
시인은,
모든 제약과 통제로부터 벗어나
가장 위대한 범죄자, 죄인,
저주받은 자가 되어야 해.
위대한 고행의 길을 통해서 마침내 시인은 미지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정원랭보의 모습이 있다. 달릴 때 머리카락이 휘날리는데 그게 별거 아닌데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일단 귀엽다. 무대가 숲 속으로 변해서 풀내음이 가득한 산들바람이 불어오면서 청량감이 확 몰려든다. 그리고 두 번째로 좋아하는 모습이 눈 감고 양팔을 벌리고 노래 부를 때 전형적인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행동인데 그게 너무 좋다. 정말 자유를 느끼는 것 같다.
정원랭보의 매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캐릭터 특성상 더 자유롭게 애드리브를 치는 것 같다. 랭보를 여러 번 본 것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애드리브를 다양하게 쳤던 것 같다. 이번 공연에서 안재영배우가 가방에 걸려 넘어질 뻔 하자 정원랭보가 그걸 보고 애드리브를 쳤다. 모두가 재미있게 실수를 넘어갈 수 있었다. 이게 진짜 공연의 묘미다! 실수를 애드리브로 넘어가는 것 현장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공연의 매력!
정원랭보의 촐랑거리며 까부는 모습도 어찌나 귀엽던지. 베를렌느를 만나 파리의 시인들을 만났지만 파리의 시인들에게 실망감을 노래하는 넘버 '앉은뱅이들'. 이 부분에서는 허세 한 스푼 넣은 멋진 랭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랭보의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박정원배우가 무대를 안방처럼 뛰고 눕고 뒹굴고 기고 엎드린다. 의자와 책상을 밟고 올라서며 걸터앉고 다리 한쪽을 올리고 무대바닥에 뽀뽀하기까지도 한다. 무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뛰어노는 강아지 같아서 귀엽고 멋지다! 정원랭보 귀엽다고 3박 4일은 말해야 하니 정원랭보이야기는 여기서 그만 멈추겠다.
랭보의 많은 매력들 중 하나는 시인들의 실제 시를 인용해서 노래를 만들어 노랫말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초록
열매, 꽃, 잎사귀, 가지들이 여기 있소
그리고 당신 때문에
뛰는 내 가슴이 여기에 있소
오로지 당신만을 향해
꿈을 꾸는 이 마음을
사랑스러운 그대 손길로
따스하게 감싸주오
극 중에서 랭보가 좋아하는 시라고 하는데 나도 이 시가 좋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집안에 사랑하는 연인이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기분이 드는 시다.
니나의 대답
코 끝 가득 바람 불어넣고
시원한 햇살 받으며
설레는 가슴 끌어안고
서로의 목소리 섞으며
함께 갈 수 있다면
네가 찾는 그곳에
골짜기로 거대한 숲 속으로
넓은 사막 초원으로
따사로운 태양이 반짝이는 네 꿈에
황금빛 모래를 뿌려주겠지
시 자체가 아름답지만 노래로 들으면 시가 더 풍부하게 느껴진다. 배우들의 좋은 목소리가 더해져서 내 코끝 가득 바람이 들어오고 햇살이 비친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보기를 추천한다. 시가 어렵게 느껴지거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내가 후자의 경우로 어렵게 느껴지던 시를 노래로 듣게 되니 시를 편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시들로 이루어진 노래와 대사의 향연을 공연장에서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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